칼을 눕히며
검지에 새긴 문신을 읽어 내고 있다
슬픔은 신에게만 국한된 감정이면 좋을 뻔했다
머리카락을 끊어 내는 중이다
헌금함에 머리카락을 넣고 천막을 뜯었다
주일이면 종탑에 갇힌 달처럼
검지를 접었다 펴며 종소리를 셌다
휘발되는 것들은 내 위로
그림자를 버렸다
종탑 위 텅 빈 새들이
예배당을 나서는 내게로 뛰어내렸다
나는 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새벽이면 십자가를 끄는 교회를 보며
칼을 눕혔다
나는 호기심을 참으며 구원을 받느라
여전히 누가 눈을 뜨고 기도하는지 알 수 없다
신은
나를
동산 위를 걸어가는
붉은 포자라고 했다

별들이 앉았다 간 네 이마가 새벽 강처럼 빛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너를 증명해 보일 수가 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는 아마, 몇 개의 국경을 넘어서
몇 개의 뻘을 건너서 온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우주 밖 어느 별을 거쳐서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 허공에 찍힌 빛들의 얼룩 때문에
누군가 조금 두근거리고 누군가 조금 슬퍼져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는 것
우리가 오래 전에 만난 나무들처럼 마주보며 서 있을 때
그때 마침 밤이 왔고, 그때 마침 술이 익었다는 것

나는 네 나라로 떠나간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가 알고 싶지만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술이 익은 항아리 속으로 네가 들어가고 나서, 나는
아주 잠깐 소리 내어 울었던 듯하다

새벽 강처럼 빛나는 저녁의 이마 위에 누군가 걸어놓고 떠난
모자, 만년필, 그리고 저 많은 빛줄기들 그 아래

꽃이 핀다, 술이 익는다, 방어가 몰려온다